유부초밥이 일본 음식이라는 건 알았는데, 에도시대 길거리 음식에서 시작됐고 여우 귀 모양을 본떴다는 데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한국식 유부초밥은 일본 원조와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같은 이름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다른 음식에 가깝거든요.

1853년, 에도 길거리에서 팔리던 것

유부초밥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건 1853년경입니다.
당시 간행된 『수정만고(守貞謾稿)』라는 기록에, 에도 지방에서 유부 한쪽 끝을 잘라 그 속에 밥을 넣은 음식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1830년대에 이미 길거리에서 이걸 파는 행상들이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요.
초기 형태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습니다. 밥만 넣거나, 두부 껍질을 섞어 넣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유부는 저렴하고, 밥을 넣으면 한 끼가 됩니다. 에도 시대 도시 서민에게는 빠르고 간편한 한 끼였으니 길거리 음식으로 퍼진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왜 이름이 '이나리즈시'인가
이나리즈시(稲荷寿司)의 '이나리'는 이나리 신사에서 모시는 신의 이름입니다. 이나리 신은 농업과 쌀의 신으로, 그 신의 사자가 바로 여우예요.

민간 신앙에서 여우는 유부를 매우 좋아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사람들이 이나리 신에게 소원을 빌 때 여우가 즐겨 먹는 유부를 제물로 바쳤고, 그 풍습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설은 모양에서 출발합니다. 유부에 밥을 채운 형태가 여우가 앉아 있는 귀 모양, 혹은 쌀가마니와 닮았다는 거예요.
여우한테 바치던 제물 모양을 본떠 만든 음식이 지금 편의점 도시락 칸을 채우고 있다는 것.
이나리 신이 쌀의 신이고, 이나리즈시가 쌀로 만든 초밥이라는 점에서 이름의 연결은 꽤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집니다.
모양도 달랐다, 지역마다
일본 안에서도 유부초밥의 모양은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지방은 직사각형 주머니 형태가 주류입니다. 속에는 설탕과 간장으로만 간을 한 단순한 밥이 들어갑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은 유부를 대각선으로 잘라 삼각형으로 만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우의 귀 모양을 본떠 삼각형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어요. 밥도 달라서, 채소 등을 섞은 조미밥을 씁니다.
간토(직사각형)·간사이(삼각형), 지역별로 다른 전통 모양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갈렸는데, 한국에 건너오면서는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한국식은 꽤 다른 음식이다
한국에서 유부초밥이 처음 소개된 건 일제강점기인 1920~1930년대로, 당시 신문과 잡지에 일본식 식문화로 등장했습니다.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은 건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도시락 문화가 퍼지면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유부초밥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1976년에는 테이크아웃 도시락 전문점들도 등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음식 자체도 조금씩 달라졌어요.
일본식은 유부를 달고 짭짤하게 조려서 맛을 냅니다. 한국식은 식초, 설탕, 소금으로 만든 배합초의 새콤한 맛을 강조하고, 다진 채소나 깨를 밥에 섞는 방식이 보편적입니다.
형태도 달라졌습니다. 일본은 유부 주머니의 입구를 아래로 두어 밥이 보이지 않게 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한국은 입구를 위로 향하게 해서 토핑을 올리는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나리즈시에서 출발했지만, 새콤한 배합초 밥에 토핑을 얹는 한국식은 지금 사실상 다른 음식이 됐습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다양한 토핑을 얹은 프리미엄 유부초밥 프랜차이즈까지 등장하며 시장이 더 넓어졌습니다. '일본 원조에서 시작됐으나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된 별개의 분파'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여우 귀에서 편의점 도시락까지
이나리 신사의 여우 귀를 본떠 만든 음식이, 에도 길거리를 거쳐, 일제강점기 신문에 실리고, 한국의 1970년대 도시락 문화에 스며들어, 지금은 새콤한 배합초 밥에 토핑을 올린 채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같은 이름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먹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식이기도 합니다. 유부 주머니 하나 안에 이 정도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