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동 낙지'를 먹으러 무교동에 갔다가 정작 식당을 찾아 헤맨 적 있으신가요.
그게 사실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무교동 낙지'의 원조는 처음부터 무교동이 아닌 곳에 있었거든요.

이름의 출발점이 이미 어긋나 있었다

1965년, 종로구 서린동 108번지 일대에 박무순 할머니가
'실비집'이라는 가게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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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양념을 볶아낸 낙지를 술안주로 내놓은 곳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낙지는 데치거나 국으로 끓여 먹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 집은 달랐습니다.

이듬해인 1966년, 인근에서 김수만 씨가 '무교동 유정낙지'를 개업하며
상권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City skyline viewed from a rooftop with arched lights

두 집 모두 주소지는 서린동이었습니다.

이름만 '무교동 낙지'로 굳었습니다.

당시 인근 직장인들이 무교동 상권을 중심으로 오가며 이 골목을 찾았기 때문에, 행정구역보다 유동 동선이 이름을 먼저 정해버린 셈이죠.

이름은 무교동에서 왔고, 낙지는 서린동에서 나왔다.

골목이 사라지자 이름만 남았다

문제는 1980~90년대에 터집니다.
도심 재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서린동 일대의 기존 식당들이
대거 철거되거나 이전해야 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원래 골목의 형태는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low angle photography of white concrete building

살아남은 식당들은 인근 종로 1가, 무교동, 다동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골목은 없어졌지만 '무교동 낙지'라는 이름은
그 사이 이미 전국에 퍼진 뒤였습니다.

1970년대 이후 '무교동'이라는 지명을 내건 식당들이
전국 곳곳에 생겨났고, 이름은 장소와 완전히 분리된 채 브랜드가 됐습니다.

a white plate topped with shrimp and veggies
2020년대

무교다동 제29지구 정비 사업으로 지금도 상권 위치가 변동 중

원조가 둘인 이유

골목이 사라지면서 '원조' 논쟁도 함께 시작됐습니다.

박무순 할머니의 실비집과 김수만 씨의 유정낙지, 두 집이 각각
다른 시점의 원조성을 주장하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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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이냐, 1966년이냐. 1년 차이로 원조 타이틀이 갈리는
상황이지만, 둘 다 서린동 출신이라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현재 '원조'를 표방하는 주요 식당들의 실제 주소지는 종로구 서린동, 청진동, 무교동, 다동 등에 넓게 분포해 있습니다.

어느 한 곳이 아닌, 근처 여러 동에 걸쳐 흩어져 있는 것이 지금의
'무교동 낙지' 골목입니다.

낙지도 사실은 달랐다

장소뿐 아니라 재료에 대한 통념도 실제와 달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교동 낙지를 향토 음식으로 믿고, 국내산 낙지를
쓸 거라 당연히 여깁니다.

실제로는 공급 부족으로 인해 중국산 낙지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았고, 원산지
허위 표시로 적발된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국산과 중국산 낙지는 같은 종이라 외형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런 혼동을 부추겼습니다.

조리법의 뿌리 역시 완전한 '서울 음식'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전라도 식재료와 서울의 조리 방식이 결합된 형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소도, 이름도, 재료도 처음 생각했던 것과 조금씩 달랐다.

지금도 'TV 원조' 경쟁은 계속된다

그 와중에 유명세는 꾸준히 쌓였습니다.

각종 매스컴 보도와 드라마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2010년대에는 '수요미식회'와 'KBS 2TV 생생정보' 같은 방송에서
원조 식당들이 다뤄지며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조명받고 있습니다.
골목이 사라진 뒤에 오히려 이름이 더 커진 아이러니한 구조입니다.
장소는 해체됐고, 원조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며, 이름은 전국구가 됐습니다.

무교동 낙지를 먹으러 갔다면, 지금 앉아 있는 가게의 실제 주소가
무교동인지 한번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