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크리머, 설탕을 한 봉지에 담아 파는 믹스커피. 이걸 처음 만든 나라가 어딘지 물어보면 대부분 잠깐 멈칫하게 됩니다. 답은 1976년의 한국이에요.

네스카페도 아니고, 맥스웰하우스 본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등산객과 낚시꾼이 등장합니다.
커피는 원래 그렇게 마시는 거였다
1970년대 한국에서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다방에 가거나, 집에서 인스턴트커피 한 스푼에 크리머 따로, 설탕 따로 넣는 것이었어요.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원래 커피란 그렇게 마시는 거라고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요.
동서식품은 1974년, 조용히 하나를 만들어냈습니다. 국내 최초의 분말형 식물성 크리머, '프리마'였어요.

이 제품이 없었다면 믹스커피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커피와 설탕만으로는 한 봉지 배합이 완성되지 않거든요. 크리머를 분말 형태로 만드는 기술이 먼저였고, 그 위에 배합과 포장이 가능해진 거였어요.
1976년 12월, 등산객을 위한 커피
동서식품이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를 내놓은 건 1976년 12월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온 국민의 아침을 겨냥한 제품이 아니었어요. 초기 홍보는 등산과 낚시 같은 야외 활동을 하는 소비자를 향했습니다. 야외에서 커피·크리머·설탕을 따로 챙길 필요 없이 봉지 하나로 해결된다는 게 핵심이었거든요.
이 발상이 세계 최초였습니다.
배합 비율을 정하는 데도 공을 들였어요. 당시 한국 소비자가 익숙했던 다방 커피의 부드럽고 달큰한 맛을 한 봉지 안에 재현하는 것이 목표였고, 동서식품은 그 비율을 맞추는 데 집중했습니다.
세계 최초 믹스커피의 핵심 기술은 커피 원두가 아니라, 크리머 분말과 배합 비율에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이 제품은 잘 팔렸습니다. 동서식품은 이미 1970년에 맥스웰하우스 인스턴트커피로 국내 커피 시장에서 70% 수준의 점유율을 갖고 있던 기업이었어요. 소비자 입장에선 이미 알던 브랜드가 더 간단한 커피를 내놓은 셈이었습니다.
전국민의 커피가 되기까지, 10년이 더 걸렸다
출시 직후부터 모든 가정의 아침을 바꾼 건 아니었습니다.
1980년, 동서식품은 국내 최초의 동결건조 커피인 '맥심'을 내놓습니다. 1987년에는 '맥심 커피믹스'가 등장했어요. 바로 이 시점부터 커피믹스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89년에는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가 출시됩니다. 이후 26년간 커피믹스 시장 판매 1위 자리를 지킨 제품이에요.
1976년이 출발점이었고, 대중화는 추정치로는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뒤였습니다.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의 커피믹스 시장 판매 1위 유지 기간
그 사이, 커피믹스는 야외용 편의식품에서 직장과 가정의 일상 제품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겼습니다. "봉지로 저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에요.
수출이 시작됐다
정확한 첫 수출 시점보다 숫자가 더 선명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커피믹스 수출량 1,621톤에서 1만 6,865톤으로 증가
추정치로는 13년 사이에 수출량이 10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됩니다. 2013년 기준으로 주요 수출국은 일본, 중국, 러시아였고, 러시아 비중이 25.4%로 가장 컸어요.

2022년 수출액은 2,259만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2024년 전체 커피류 수출에서는 이스라엘이 18.1%로 최대 국가로 올랐어요. 수출 목적지가 러시아 중심에서 여러 나라로 분산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외국인이 믹스커피를 찾기 시작한 방식
해외에서 믹스커피를 찾는 경로는 조금 독특합니다.
수출 통계에 잡히는 B2B 거래 외에도,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들이 직접 사 가거나 국내 편의점과 마트에서 구입해 가는 방식이 병행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한국 커피믹스를 처음 마셔봤는데 왜 이렇게 맛있냐"는 반응이 꾸준히 등장하죠.
그 낯선 개념이 한국에서 1976년에 만들어진 겁니다. 등산객을 위해서요.
"없으면 불안하다"고 말하는 소비자가 생기기까지, 봉지 하나에 재료를 배합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것
2022년 소비자 반응을 보면, 커피믹스를 두고 "어머니도 즐겨 마셨다", "없으면 불안하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제품 하나가 세대를 넘어서 반복 구매되는 생활 습관이 된 셈입니다.
지금은 그 습관이 국경 밖으로도 번지는 중이에요. 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수출 지도가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1976년, 동서식품이 분말 크리머를 커피·설탕과 함께 봉지에 넣으면 어떨까 생각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뜨거운 물 한 컵으로 이어지고 있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