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1981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는 돈까스집이 있습니다.
상호는 '잉글랜드 왕돈까스'.
이름만 보면 영국 어딘가에서 건너온 레시피를 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음식이 영국과 실제로 연결되는 지점은 사실상 없습니다.
가벼운 서양 요리라는 뜻이었다
'경양식(輕洋食)'이라는 단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자 그대로 풀면 '가벼울 경(輕), 서양 요리 양식(洋食)'.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를 "간단한 서양식 일품요리"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풀코스 정찬과는 다르게, 절차가 간단하고 양이 적은 서양식 한 그릇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단어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1960~70년대에 경양식 레스토랑이 대중화되면서 메뉴판 위에 '돈까스'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가벼운 서양 요리'였지만, 뿌리를 따라가면 영국이 아니라 일본 식당 한 곳에 닿습니다.
1929년, 도쿄 우에노의 식당에서
한국 경양식 돈까스의 계보를 추적하면 일본으로 향합니다.
1929년, 도쿄 우에노의 식당 폰치켄에서 전직 궁내청 요리사가 돼지고기를 두껍게 썰어 튀겨낸 메뉴를 내놓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돈카츠의 시초로 알려진 장면입니다.
그 이전인 1899년에도 렌가테이에서 '포크 가츠레츠'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음식을 팔았지만, 현재의 돈카츠 형태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젓가락으로 집어 밥과 함께 먹는 지금의 구성이 자리잡힌 건 1929년이었다는 게 통설입니다.
젓가락으로 먹는 밥반찬 형태의 현대적 돈카츠가 확립된 해
일본은 본래 육식 금기 문화가 강했습니다. 서양의 커틀릿을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라,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고기를 두껍게 썰고 빵가루 튀김옷을 입히는 방식으로 변형했습니다. 그렇게 '포크 가츠레츠'는 일본의 요쇼쿠(洋食), 즉 일본식 서양 요리로 변모했습니다.
이 음식이 한국으로 건너온 것이 경양식 돈까스의 실제 출발점입니다.
왜 이름만 영국이 됐을까
1960~70년대 한국에서 서구 문화는 선진국의 상징이었습니다.
유럽 지명, 특히 영어권 나라의 이름을 상호에 붙이는 것은 당시 외식업계에서 통용되던 마케팅이었습니다. 음식의 실제 계보보다 이름이 주는 이미지가 더 중요했던 시대였습니다.
그 분위기 속에서 1981년 인천에 '잉글랜드 왕돈까스'가 문을 열었습니다. '잉글랜드'라는 단어가 붙은 경양식집들이 198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런 서구식 지명을 쓴 상호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들어서기 전까지, 이 이름들은 지역의 주요 외식 공간이었습니다.
음식의 뿌리가 일본을 경유한 것과 무관하게, '영국식'이라는 인상은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오해가 지금까지 간판에 남아 있는 셈입니다.
수프와 단무지가 함께 나오는 이유
경양식 돈까스를 시켜본 적 있다면 익숙한 구성이 있습니다.
옥수수 크림수프가 먼저 나오고, 돈까스 옆엔 깍두기나 단무지가 딸려 나옵니다. 영국 정찬 어디에도 없는 구성입니다.
이 조합은 일본식 양식의 방식과 한국의 식문화가 함께 섞인 결과물입니다. 서구식 코스 요리에 수프는 있지만, 옥수수 크림수프에 단무지를 곁들이는 방식은 영국이나 순수 일본 요쇼쿠 어디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서양 커틀릿은 일본에서 한 번 변형됐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또 한 번 달라졌습니다.
수프와 단무지가 한 상에 오르는 건, 이 음식이 걸어온 경로의 흔적입니다.
지금도 간판엔 잉글랜드가 적혀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식 돈카츠 전문점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경양식 돈까스'와 '일본식 돈카츠' 사이의 구분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두꺼운 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과, 얇은 고기에 갈색 소스를 얹어 먹는 방식이 각각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천의 잉글랜드 왕돈까스는 지금도 열려 있습니다.
영국과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없습니다. 그 간판이 붙어 있는 한, 1980년대 사람들이 '서구'라는 이름에 품었던 기대감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